나보다 더 전문적인 AI가 있는데, 나는 무엇을 잘해야 할까

거대한 원형 지식 공간에서 여러 전문 분야를 연결하는 빛을 한 개발자가 바라보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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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I로 개발하면서 문득 궁금해진 게 있다.

AI 시대에도 개발자는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할까?

예전에는 특정 언어나 프레임워크, 데이터베이스를 깊이 아는 개발자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옆에 AI가 있다.

내가 모르는 기술을 물어보면 나보다 훨씬 자세하게 설명하고 코드도 만들어준다. 물론 틀릴 때도 많다. 그래도 알고 있는 범위와 답을 꺼내는 속도만 보면 내가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스페셜리스트 같은 AI가 있는데, 나도 계속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할까?

1. 나는 원래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했다

나는 AI가 나오기 전부터 한 분야만 계속 파는 것보다 이것저것 직접 해보는 걸 좋아했다.

백엔드 개발을 오래 했지만 프론트엔드도 궁금했다. React와 Next.js도 만져봤고, 개인 앱을 만들고 싶어서 Flutter도 사용했다. 새로운 기술이 보이면 일단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좋게 말하면 제너럴리스트다. 그런데 다르게 말하면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잘하는 게 뭔데?”라는 질문을 받으면 답이 조금 애매했다. 백엔드 개발자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나는 늘 백엔드 밖의 영역도 궁금해했다.

한 분야를 정말 깊게 아는 개발자를 보면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도 저렇게 하나를 파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하면 또 다른 게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나는 제너럴리스트 쪽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2. 이제 모르는 분야도 일단 시작할 수 있다

AI와 함께 개발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시작하는 데 필요한 부담이었다.

예전 같으면 익숙하지 않은 기술을 사용하기 전에 문서부터 찾아보고 기본 개념을 공부해야 했다.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몰라 시작을 미루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일단 AI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내가 하려는 일과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 필요한 개념을 알려주고, 몇 가지 방법을 비교해주고, 시작할 수 있는 코드까지 만들어준다.

물론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럴듯하게 틀린 답도 하고, 전체 맥락을 놓친 채 지금 당장 동작하는 코드만 내놓기도 한다. 바이브 코딩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나면서 코드 자체보다 AI가 같은 원칙 안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을 더 고민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쉽게 들어가지 못했던 영역을 일단 경험해볼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 변화는 나처럼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꽤 큰 기회처럼 느껴진다.

3. 그러면 나는 뭘 잘해야 하지?

여기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AI보다 Spring을 더 많이 알아야 할까? Flutter 문법을 더 많이 외워야 할까? 아는 것의 양과 답을 내놓는 속도로 AI와 경쟁하는 게 가능할까?

요즘은 차라리 AI가 내놓은 답을 보고 “이건 지금 우리 상황에는 안 맞는데?”라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서비스 하나를 만들어도 백엔드만 알아서는 끝나지 않는다. 앱으로 만들지 웹으로 만들지도 정해야 하고, 서버를 둘지 말지도 고민해야 한다. 만들고 나면 누가 운영할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 사용자는 실제로 이 기능을 쓸지도 생각해야 한다.

각각의 구현 방법은 AI가 나보다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포기할지는 대신 정해주지 못한다. 선택이 틀렸을 때 책임지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어쩌면 AI 시대의 제너럴리스트는 이것저것 조금씩 아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답을 연결해서 지금 필요한 방향을 정하는 사람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4. 그래도 깊이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스페셜리스트가 이제 필요 없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AI가 내놓은 결과가 이상한지 알아보려면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분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나도 백엔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버 구조나 데이터 처리 방식에서 이상한 부분을 비교적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반대로 경험이 적은 분야에서는 일단 동작한다는 이유로 넘어가기 쉽다. 화면이 나오고 오류가 없으면 잘 만들어졌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AI로 기능을 빠르게 늘리고 나서야 “이걸 왜 만들었지?”라고 물었던 경험도 비슷했다. AI가 구현해줬다고 해서 내가 그 기능의 목적과 구조까지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깊이를 버리고 넓게만 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에게는 백엔드라는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을 가지고 프론트엔드와 앱, 제품과 운영까지 연결해보는 방식이 더 맞는 것 같다.

5. 아직 답은 잘 모르겠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불안하다.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은 어느 것 하나 깊게 모른다는 뜻은 아닐까. AI가 없으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개발자가 되는 건 아닐까. AI의 답을 연결하고 판단하는 일도 결국 각 분야를 어느 정도 알아야 가능한데, 그 “어느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도 잘 모르겠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지금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아마 둘 중 하나만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여러 분야를 기웃거렸던 내 경험이 예전보다 쓸모 있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AI에게 필요한 전문성을 빌릴 수 있다면, 나는 그 답들을 연결하고 어느 방향으로 갈지 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조금 애매한 경력처럼 느껴졌던 내 성향이 이제는 나름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몇 년 뒤에는 또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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